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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고독, 단절, 감정노동) 코로나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을 때, 저도 처음엔 그저 쉬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락을 미루는 게 습관이 됐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시절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와닿은 건,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혼자라서 편한 건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건지주인공 지나는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입니다. 점심은 늘 혼자 먹고, 후배가 따라붙으려 하면 자리를 피하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습니다.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한쪽은 진짜 혼자가 좋아서이고, 다른 쪽은 사람에게 너무 많이 치여서 방어막을 친 경우입니다. 지나는 분명히 후자에 가깝습니.. 2026. 6. 24.
영화 페이탈 피어 (집착심리, 가스라이팅, 데이트폭력) 처음에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알고 보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한때는 그 말이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페이탈 피어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크 월버그의 초기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접했다가,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불편한 감정을 안고 돌아왔습니다.집착심리, 사랑처럼 위장하는 방식영화 초반의 데이빗은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잘생긴 외모에 말도 잘 통하고, 니콜의 가족들에게도 금세 환심을 삽니다. 저도 처음 이 장면들을 볼 때는 '이게 왜 스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데이빗의 행동 패턴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러브 바밍(Love Bombing)에 해당합니다. 러브 바밍이란 상대를 압.. 2026. 6. 23.
리뷰 드라마 사인 (법의학, 부검, 타살) 시신이 바뀐다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그 황당함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드라마 사인은 같은 시신을 두고 두 법의관이 완전히 다른 사인을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한쪽은 자연사, 다른 쪽은 타살. 이 첫 장면 하나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집니다.같은 시신, 다른 결론이 가능한 이유법의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제대로 들여다본 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부검이라고 하면 그냥 사인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드라마에서 이명한 교수는 사인을 비외상성 지주막하출혈, 즉 자연사로 판정합니다. 반면 국립과학.. 2026. 6. 23.
리뷰 나의 해방일지 (추앙, 공허함, 미정) 종영 후 3주가 지나도 넷플릭스 한국 1위를 유지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당시 전 세계 1위였던 기묘한 이야기를 한국에서만 꺾은 작품, 바로 나의 해방일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드라마가 그렇게까지 화제가 된 이유를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가 왜 이렇게 남을까나의 해방일지는 JTBC에서 2022년 4월부터 방영된 16부작 드라마입니다. 박혜영 작가 특유의 서사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러티브 미니멀리즘(Narrative Minimalism)이 특징적인 작품입니다. 내러티브 미니멀리즘이란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보다 인물의 내면 변화와 일상적 감정의 흐름을 중심에 두는 서사 방식으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막장 전개나 반전 없이도 이야기가 충분히 힘을 갖는.. 2026. 6. 22.
리뷰 마당이 있는 집 (겉모습, 심리스릴러, 트라우마)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제목만 보면 따뜻하고 여유로운 전원 생활 이야기 같은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화면 너머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더군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삶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이 작품은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파고듭니다.겉모습만으로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저도 살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늘 웃고 다니고 생활도 안정적으로 보이던 사람이 있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가까워지고 나서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삶은 겉모습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드라마 속 주란의 집도 그렇습니다. 고급스러운 .. 2026. 6. 22.
영화 계춘할망 (가족서사, 감정선, 제주배경) 가족 중 누군가와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다가 뒤늦게 그 사람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게 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영화 계춘할망을 보는 내내 그 기억이 자꾸 떠올랐고, 화면보다 기억 속 장면들을 더 오래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가족서사, 눈물보다 쌓임이 먼저다계춘할망은 정서적 촉매(emotional catalyst), 즉 관객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치를 상당히 후반부까지 아끼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정서적 촉매란 관객이 특정 장면에서 갑작스럽게 감정이 쏟아지도록 설계된 서사 장치를 가리킵니다. 많은 한국 상업 영화들이 이 장치를 초중반부터 과도하게 활용하는 데 비해, 이 영화는 할머니 개춘과 소녀 해지 사이의 어색한 동거를 꽤 긴 호흡으로 보여주며 감정을 천천히 쌓아올립니다.저.. 2026.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