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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기 리뷰 (판타지 설정, 그림 서사, 로맨스 한계)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또 사극 로맨스구나" 하고 반쯤 건성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마왕을 봉인하는 그림, 신에게 점지받은 운명의 두 아이, 붓을 든 화공이 세상을 구한다는 설정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됐습니다. 홍천기는 판타지 설정, 그림이라는 소재, 그리고 로맨스 서사가 맞물리는 구조인데, 세 축의 완성도가 고르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판타지 설정: 무속과 신화를 엮은 세계관의 가능성드라마의 뼈대는 샤머니즘(Shamanism) 기반의 세계관입니다. 샤머니즘이란 신령한 존재와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이 주술과 의례를 통해 현실에 개입한다는 전통 신앙 체계로, 한국에서는 수천 년간 민간 신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이 무속 세계관을 그대로 .. 2026. 6. 25.
영화 위트 (환자 존엄성, 완화의료, 인간관계)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첨단 의학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가족이 큰 수술을 받았던 시기, 병원 복도를 매일 오가면서 저는 좋은 의사와 좋은 약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위트(Wit)를 보기 전까지는요.환자는 데이터가 아니다 — 의료 현장의 비인격화 문제영화의 주인공 비비안 베어링은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성스러운 소네트(Holy Sonnets)를 전공한 저명한 교수입니다. 그는 진행성 전이성 난소암(advanced metastatic ovarian cancer), 즉 암세포가 난소를 넘어 복강 전체로 퍼진 4기 상태라는 진단을 받고 임상시험에 참여합니다. 담당 의사 키키안 박사는 헥사메토실(Hexamethosil)과 빈플라틴(V.. 2026. 6. 24.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고독, 단절, 감정노동) 코로나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을 때, 저도 처음엔 그저 쉬고 싶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락을 미루는 게 습관이 됐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습니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시절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와닿은 건,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혼자라서 편한 건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건지주인공 지나는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입니다. 점심은 늘 혼자 먹고, 후배가 따라붙으려 하면 자리를 피하고,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습니다.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한쪽은 진짜 혼자가 좋아서이고, 다른 쪽은 사람에게 너무 많이 치여서 방어막을 친 경우입니다. 지나는 분명히 후자에 가깝습니.. 2026. 6. 24.
영화 페이탈 피어 (집착심리, 가스라이팅, 데이트폭력) 처음에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알고 보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한때는 그 말이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페이탈 피어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크 월버그의 초기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접했다가, 예상보다 훨씬 무겁고 불편한 감정을 안고 돌아왔습니다.집착심리, 사랑처럼 위장하는 방식영화 초반의 데이빗은 솔직히 말해서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잘생긴 외모에 말도 잘 통하고, 니콜의 가족들에게도 금세 환심을 삽니다. 저도 처음 이 장면들을 볼 때는 '이게 왜 스릴러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데이빗의 행동 패턴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러브 바밍(Love Bombing)에 해당합니다. 러브 바밍이란 상대를 압.. 2026. 6. 23.
리뷰 드라마 사인 (법의학, 부검, 타살) 시신이 바뀐다는 게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그 황당함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드라마 사인은 같은 시신을 두고 두 법의관이 완전히 다른 사인을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한쪽은 자연사, 다른 쪽은 타살. 이 첫 장면 하나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집니다.같은 시신, 다른 결론이 가능한 이유법의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제대로 들여다본 건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부검이라고 하면 그냥 사인을 확인하는 절차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드라마에서 이명한 교수는 사인을 비외상성 지주막하출혈, 즉 자연사로 판정합니다. 반면 국립과학.. 2026. 6. 23.
리뷰 나의 해방일지 (추앙, 공허함, 미정) 종영 후 3주가 지나도 넷플릭스 한국 1위를 유지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당시 전 세계 1위였던 기묘한 이야기를 한국에서만 꺾은 작품, 바로 나의 해방일지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드라마가 그렇게까지 화제가 된 이유를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가 왜 이렇게 남을까나의 해방일지는 JTBC에서 2022년 4월부터 방영된 16부작 드라마입니다. 박혜영 작가 특유의 서사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러티브 미니멀리즘(Narrative Minimalism)이 특징적인 작품입니다. 내러티브 미니멀리즘이란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보다 인물의 내면 변화와 일상적 감정의 흐름을 중심에 두는 서사 방식으로,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막장 전개나 반전 없이도 이야기가 충분히 힘을 갖는.. 2026.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