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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초능력자 드라마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중년남자, 신선함, 아쉬움)

by hello-ellie1 2026. 5. 7.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다가 지쳐버린 적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시기가 꽤 길었습니다. 넷플릭스 일본 드라마 조금만 초능력자를 보면서 그 시절이 불쑥 떠올랐고,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유독 개인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조금만 초능력자 포스터

모든 것을 잃은 중년 남자가 이상한 회사에 취직하기까지

드라마의 주인공 분타는 40대 후반에 횡령이 발각되어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맞이한 인물입니다. 서류 전형에서 자신을 통과시킨 회사가 어디냐고 검색해보니 이름도 생소한 회사.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외출을 감행한 분타는 면접장에 도착해서 자신보다 스무 살은 어린 취업준비생들의 판에 박힌 답변을 듣다가 자제심을 잃고 팩트 폭격을 퍼붓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분타 편이었습니다. 면접 현장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 대본 같은 답변들이 정말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해봤을 테니까요. 분타의 돌발 행동은 황당하지만, 그 안에 담긴 피로감은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면접 후 탈락을 예감하며 로비에 앉아 있던 분타에게 면접관이 다가와 오히려 합격을 통보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최종 면접을 위해 찾아간 자리에는 서류도 면접관도 없이 알약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회사 사장 키자씨는 이 알약을 먹으면 초능력이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분타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알약을 삼키고, 노나마라는 회사에 최종 합격하게 됩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활용하는 핵심 서사 장치는 '나러티브 카타르시스(narrative catharsis)'입니다. 나러티브 카타르시스란 이야기 속 인물이 극단적인 밑바닥을 경험한 뒤 예상치 못한 반전을 통해 정서적 해소를 이끌어내는 구조를 말합니다. 분타의 경우 직장과 가정 모두를 잃은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독자는 그의 회복 과정을 더 몰입감 있게 따라가게 됩니다.

노나마에 입사한 분타는 사택에서 동료 직원 시키와 부부 행세를 하며 생활하게 됩니다. 시키는 왠지 투명한 말투로 분타를 맞이하고, 연기인지 진심인지 모를 태도로 그를 대합니다. 저는 이 설정에서 드라마가 단순한 직장물이나 초능력 판타지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어색하고 묘한 동거 생활이 이야기에 예상 밖의 온도를 만들어주거든요.

드라마가 다루는 초능력은 이른바 '마이크로 파워(micro power)' 개념에 가깝습니다. 마이크로 파워란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아주 좁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작동하는 소규모 능력을 뜻합니다. 분타의 첫 임무들을 보면 이 개념이 명확해집니다. 특정 인물이 우산을 소지하게 만들거나, 스마트폰 배터리를 소진시키거나, 알람시계를 바라보는 것들입니다. 각각의 임무는 맥락 없이 주어지고, 왜 해야 하는지 처음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 있습니다. 타카아시 켄사쿠의 스마트폰 배터리를 소진시키기 위해 분타가 혼자 게임을 플레이하고 앱 알림을 마구 설정하는 장면인데요. 저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성실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제 경험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이 사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장면이 더 와닿았습니다.

임무 완수 후 결과를 확인하는 장면에서 드라마의 주제가 선명해집니다. 우산을 가지고 있던 덕분에 우연히 빚을 갚게 된 스치키 타쿠마, 배터리가 방전된 덕분에 인연이 된 타카아시 켄사쿠. 사소한 개입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누군가의 삶에 닿는다는 설정입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초능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분타: 손이 닿은 사람의 마음속 소리를 듣는 능력
  • 오스케: 식물에 손을 대면 꽃이 개화하는 능력
  • 엔자쿠: 무언가를 약간 미지근하게 만드는 능력
  • 한조: 동물에게 간곡히 부탁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

모두가 세상을 구할 수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 매력이기도 합니다.

설정은 신선한데, 전개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

드라마의 원작은 작가 노기 아키코와 배우 오이즈미 요의 협업으로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노기 아키코는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중세를 직자 등으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작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세를 직자의 여주인공 크로사와 코코루 캐릭터에 꽤 빠져서 봤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이 기대치를 높였던 건 사실입니다.

조금만 초능력자는 초반부에 소소한 일상물처럼 시작하다가 회차가 진행될수록 스케일이 점차 커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드라마 제작 용어로 '장르 드리프트(genre drift)'라고 합니다. 장르 드리프트란 드라마가 처음에 설정한 장르적 분위기에서 서서히 벗어나 다른 장르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 일상 코미디에서 SF적 요소와 미스터리로 넘어가는 흐름이 그렇습니다.

이 변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변화의 속도와 완성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느낀 건, 초반의 따뜻하고 소소한 분위기가 매력이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그 온도가 흐트러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쌓이기보다는 중간중간 끊기는 느낌이 있어서 몰입이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특히 '조금만 있는 능력'이라는 아이디어는 드라마의 가장 독창적인 설정인데, 제 경험상 이 설정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장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를 들어 엔자쿠의 미지근하게 만드는 능력은 한두 번 웃음 포인트로 쓰이고 나서는 크게 활용되지 않았고, 한조의 동물 부탁 능력도 비둘기 장면처럼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지만 더 다양한 상황에서 파고들 여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아오이의 연기는 드라마의 큰 자산입니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한 그녀는 후반부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캐릭터가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상태를 드라마 분석 용어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고 합니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인물의 내면이 변화해 가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미야자키 아오이는 시키라는 인물의 캐릭터 아크를 충실하게 소화해내며, 시청자가 그 혼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일본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감정 이입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공감 지수(empathy index)'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공감 지수란 시청자가 등장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얼마나 깊이 동화되는지를 나타내는 비공식적 척도입니다. 이 드라마의 공감 지수는 초반부가 높고 후반부로 갈수록 편차가 생기는 편입니다.

일본 콘텐츠 소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최근 일본 드라마 시청자들은 거대한 갈등보다 소소한 일상 속 감정적 교류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출처: NHK 방송문화연구소). 이 드라마가 초반부에 높은 호응을 받은 것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넷플릭스 코리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오리지널 드라마의 한국 내 시청 시간은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출처: Netflix Korea). 조금만 초능력자처럼 일상적 공감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특히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아까 이야기했던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분타의 임무들처럼, 저도 제가 한 사소한 노력이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생각이 들자 드라마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초능력자는 가볍게 시작해서 점점 묵직해지려는 드라마입니다.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지만, 한 번쯤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였던 적이 있는 분이라면 분타의 이야기가 생각 이상으로 개인적으로 와닿을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으니, 긴 드라마보다 부담 없이 시작하고 싶다면 이 작품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youtu.be/B3HOHPNlGZ4?si=sf72eKlk-57ala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