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을 나오면서 아이 손을 잡는 순간, 문득 조르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다 보니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단순한 SF 설정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인간과 외계인의 충돌을 다루는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를 계속해서 뒤집는 작품입니다. 엔딩을 보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영화가 관점을 뒤집는 방식
영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저는 당연히 인간 편이었습니다. 바미기르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은 직관적으로 공포스럽고, 그가 괴물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그런데 냉동고 안에서 칼리의 시신이 발견되는 순간, 영화가 만들어 놓은 전제가 완전히 무너집니다.
바미기르가 마을을 공격한 것은 먼저 칼리를 죽인 양배 때문이었습니다. 칼리는 게르트의 황위계승자, 즉 세자였고, 양배는 그 아이를 돈이 될 만한 생물로 보고 사냥한 뒤 냉동 보관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느낀 건데, 칼리의 시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인간 어린아이와 닮게 연출되어 있습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죄책감을 심으려 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순서와 방식을 의미합니다. 호프는 외계인에 대한 핵심 정보를 의도적으로 후반부에 배치해, 관객이 전반부에는 인간의 시선으로만 외계인을 바라보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바미기르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범석이 목격하는 순간이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이게 단순한 짐승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처음으로 싹트는 지점이죠.
호프가 보여주는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sm), 즉 인간이 자신을 기준으로 다른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태도는 양배의 행동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양배는 칼리를 냉정하게 죽이지만 눈앞의 고양이는 구하려고 핸들을 꺾습니다. 덕분에 성기가 차에서 떨어집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불합리하다는 감정이 강하게 올라왔는데, 동시에 외계인들이 인간을 바라볼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외계인의 냄새를 끊임없이 불평하지만, 정작 돼지를 키우는 덕연도, 범석도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냄새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외계인의 냄새만을 혐오의 근거로 삼죠. 이 장면들이 제 경험상 생각보다 훨씬 깊이 박혔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 부분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호프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핵심 시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외계인들은 지구에 의도적으로 침략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항로 이탈로 불시착한 것입니다.
- 최초의 폭력은 외계인이 아닌 인간 양배가 먼저 저질렀습니다.
- 인간이 총을 먼저 쏘는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하지만, 외계인이 선제 공격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외계인들의 언어에 자막이 붙기 시작하는 시점은, 관객이 그들을 '괴물'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쿠얼의 죽음과 믿음이라는 결말의 의미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쿠얼의 추락은 단순한 스펙터클이 아닙니다. 나홍진 감독은 쿠얼을 기독교에서 여호와, 즉 신에 해당하는 존재로 상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설정이 처음 읽혔을 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SF 영화에서 신이 실제로 등장해 죽어버리는 설정은 쉽게 소화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죽음이 의미하는 바는 두 세계의 중심이 동시에 붕괴되는 사건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신이라 불리던 존재가 사라졌고, 게르트 제국에서는 황제를 잃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장면이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게 처리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엄청난 폭발이 벌어지는데도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묘하게 차분해서, 오히려 공허한 감각이 더 강하게 남았습니다.
조르의 마지막 대사는 성경 히브리서 11장 1절을 직접 레퍼런스로 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실상(Substance)이란 아직 현실에 나타나지 않은 약속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보이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는 태도입니다.
조르는 칼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증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베이오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 칼리의 부활을 위해 내놓습니다. 이 희생 서사(Sacrifice Narrative), 즉 공동체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개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SF 블록버스터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쿠키 영상에서 성기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성기는 차에서 떨어져 사실상 사망한 것으로 묘사됐는데, 살아서 나타납니다. 조르가 말했듯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인간 쪽에서 먼저 증명하는 존재가 성기인 셈입니다.
성기와 마베이오를 대비해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구도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기는 괴물 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지만 분노와 복수심만 남은 인물처럼 보입니다. 반면 마베이오는 생김새는 괴물이지만 믿음과 희생이라는 가치에 따라 죽음을 선택합니다. 어느 쪽이 더 인간다운가, 라는 질문을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영화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나홍진 감독의 전작 곡성은 개봉 당시 누적 관객 수 688만 명을 기록하며 장르 영화로서 이례적인 흥행을 보였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호프 역시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장르적 쾌감과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끌어안으려 한다는 점에서, 단순 흥행 이상의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호프를 산부작, 즉 전체 하루를 다루는 연작 시리즈로 구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출처: 씨네21). 1편은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의 이야기만 담고 있으며, 이후 편에서는 저녁과 밤, 새벽까지 이어지는 서사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엔딩에서 느끼는 당혹감, 이제야 본격 시작인데 끝나버린다는 그 감각은 어쩌면 의도된 것입니다.
호프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세계관을 머리로 다 정리하지 않아도, 영화 자체의 흐름만으로 관객을 충분히 몰아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칼리를 잃은 조르의 마음이 그 어떤 설명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속편이 나온다면, 저는 이번보다 훨씬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