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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상처, 치유, 용서)

by hello-ellie1 2026. 6. 18.

사형 집행을 앞둔 남자와 세 번의 자살 시도를 한 여자. 이 영화는 가장 극단적인 두 인물을 마주 앉혀 놓고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고, 불편했기 때문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포스터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했던 기억

처음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예상했습니다. 착한 여자가 나쁜 남자를 감화시키는 뻔한 이야기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그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유정은 겉으로는 이사장 가문 출신의 미술 강사, 한때 대학가요제에 나간 가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15살 때 사촌 오빠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 트라우마가 있었고, 세 차례의 자살 시도 이력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트라우마(Trauma)란 극심한 심리적 충격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PTSD란 생명을 위협하거나 극도의 공포를 유발한 사건 이후에 반복적인 플래시백, 회피 행동, 감정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심리 장애입니다.

윤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인마라는 이미지 뒤에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앞 못 보는 동생과 거리를 떠돌다 동생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직장에서 말수 없고 차가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이하지 않았던 동료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가 그 시기 가족 문제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느낀 건 '나는 표면만 보고 이 사람 전체를 안다고 착각했다'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영화 속 두 사람도 그런 식으로 처음에는 서로를 오해합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유정이 윤수에게 "저 솔직해요. 무서워요"라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착한 척, 용기 있는 척 하지 않는 그 태도가 오히려 두 사람 사이에 진짜 대화를 열었습니다. 관계에서 솔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자기 노출(Self-disclosure): 유정이 먼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윤수의 방어 기제가 허물어집니다.
  • 공감적 경청(Empathic Listening): 판단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가 신뢰를 형성합니다.
  • 감정 조절 실패(Emotional Dysregulation): 두 인물 모두 초반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연결 지점이 됩니다.

용서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장면은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윤수를 면회 오는 장면입니다. "아직 진정으로 용서를 못하겠지만,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여기 오겠다"는 그 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용서(Forgiveness)는 심리학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내려놓는 과정이며, 이는 가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 자신의 심리적 회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용서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복수심이나 분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의 만성 스트레스 반응을 강화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제 경험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힘든 시기에 저를 배신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오래 원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노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고, 오직 저만 소진시키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용서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유정이 엄마를 용서하러 병원으로 가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죽기보다 힘든 일"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찾아가는 그 행동 자체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치유의 방향성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소름이 돋았고,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이 영화가 일부 장면에서 비극적 설정을 조금 과하게 쌓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아동기 방임과 트라우마, 자살 시도, 범죄 피해를 경험했다는 설정은 감정적으로 강하게 작동하지만, 동시에 "이건 너무 특수한 사례 아닌가"라는 거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설정에 의존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이야기였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습니다.

사형제도와 인간 존엄성 사이에서

이 영화는 사형제도(Capital Punishment)에 대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집니다. 사형제도란 국가 권력이 법적 절차를 통해 범죄자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제도로, 그 정당성과 효과에 대한 논쟁이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55개국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출처: 국제앰네스티). 영화 속 오빠가 "법 집행이지 죽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유정이 "어쨌든 죽이는 거잖아"라고 반박하는 대화는 이 논쟁의 핵심을 짧게 담아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가 사형제도의 옳고 그름을 직접 판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대신 "변화한 사람을 집행하는 것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을 관객에게 남겨둡니다. 윤수가 집행 직전에 보이는 모습, 그가 남기는 마지막 말들은 개인의 내적 변화가 법적 판결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은 대사는 윤수의 마지막 말입니다. "이 세상에 목요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 속 문장. 유정을 만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는 그 말이, 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가능성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비극성을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멍한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무겁고 따뜻하다는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여운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걸 보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보고 난 뒤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쉽게 소화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참고: https://youtu.be/bTTdCW9FSRM?si=XlB9NqfyR12KUY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