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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물루스 나의 아버지 (이민자가족, 부모자식, 정신건강)

by hello-ellie1 2026. 7. 26.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면 가족도 괜찮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사랑과 이해는 다른 문제라는 걸 몸으로 배웠는데, 이 영화는 그 깨달음을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로물루스 마이 파더는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사랑만으로는 지탱되지 않는 가족의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로물로스 포스터

이민자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것들

로물루스는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로, 호주 멜버른에서 철공소 일을 하며 아들 레이먼드를 키웁니다. 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 즉 이주 적응(accultur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주 적응이란 새로운 문화권에 편입되면서 언어, 관습, 정체성이 충돌하고 재편되는 심리적·사회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로물루스가 주변 사람들에게 대놓고 무시당하고 조롱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이 과정의 고통을 말없이 보여줍니다.

제가 해외에서 살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 취급받는 기분, 그게 얼마나 사람을 조용히 갉아먹는지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로물루스의 침묵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속여가며 아내 크리스티나를 끝까지 사랑했고, 크리스티나가 다른 남자인 미트루와 떠난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 1세대는 정착 과정에서 경제적 불안정과 문화적 소외감이 중첩되어 정신건강 취약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영화는 이 사실을 통계로 설명하는 대신, 로물루스 한 사람의 얼굴에 담아냅니다.

이 영화에서 로물루스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로서의 문화적 소외와 차별
  •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도 가정을 유지하려 한 내적 갈등
  • 경제적 압박 속에서도 아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려 한 가치관

아이 곁에 있다는 것과 곁에 있어준다는 것의 차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로물루스는 아들 레이먼드 곁에 물리적으로 있었습니다. 밥도 함께 먹고, 일도 하고, 작은 생물을 살려보내는 법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은 왜 점점 멀어졌을까요.

아동 발달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애착 이론이란 아이가 주 양육자와의 정서적 유대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형성하며, 이 유대의 질이 이후 인간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레이먼드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주변의 어른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과정을 너무 어린 나이에 목격하면서 과도하게 성숙해졌습니다. 이른바 조기 성인화(parentification)인데, 부모의 역할을 아이가 대신 감당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저도 한국에 돌아와서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 불안과 걱정을 아이 앞에서 숨기지 못했을 때, 아이가 저를 달래려는 눈빛을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로물루스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면서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장면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지만 아들에게는 또 하나의 상실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내에서도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아동 정서발달 관련 자료에 따르면, 가정 내 불안정한 양육 환경은 아동의 사회정서 발달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영화가 던지는 질문, 저에게 남은 질문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불편합니다. 로물루스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크리스티나도 단순히 나쁜 엄마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미트루 역시 결국 경제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집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나름의 고통을 안고 있었고, 그 고통이 서로를 향해 튀었을 뿐입니다.

영화 서사 구조 면에서 이 작품은 논리적 인과(narrative causality)보다는 정서적 축적(emotional accumulation)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논리적 인과란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명확히 연결되는 방식이고, 정서적 축적이란 장면 장면의 감정이 쌓여 관객이 서서히 무게를 느끼게 되는 방식입니다.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느린 속도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가족의 균열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수백 번의 작은 순간들로 만들어지니까요.

레이먼드가 어머니에게 "당분간 만나고 싶지 않다"고 전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 말은 분노가 아니라 지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나오는 그 담담함이요.

저는 부모가 된 지금,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매일 느낍니다. 로물루스는 분명 좋은 아버지였지만, 영화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족 안에서 자신의 방식만 옳다고 믿어온 건 아닌지 돌아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볼 가치가 있습니다. 화려한 연출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꽤 오래 마음속에 뭔가가 남습니다. 저처럼 해외 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온 분들이라면, 그 여운이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참고: https://youtu.be/kBB6swTGcOQ?si=uJdx2EzDmvKSjt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