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게 언제나 반가운 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몇 년 만에 마주하면 생각보다 어색하고, 대화가 자꾸 겉돌 때가 있더라고요. 영화 동창 최후의 만찬은 바로 그 어색함을 가감 없이 꺼내 보여줍니다. 오래된 관계 안에 쌓인 감정들이 어떻게 터지는지, 저도 영화를 보면서 꽤 많은 장면이 겹쳐 보였습니다.

동창회가 불편한 이유, 영화가 제대로 짚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게 직업 이야기와 연봉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동창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누군가는 돈 자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걸 흘겨보는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이라고 부릅니다. 사회 비교 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평가할 때 주변 타인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흔들린다는 이론입니다. 동창회가 유독 불편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다는 인식 때문에 비교가 더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그 구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업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현빈은 회비를 전액 내겠다며 존재감을 드러내다가 슬쩍 자리를 뜨고, 나머지 인물들은 당황합니다. 생산직으로 일하는 상열은 연봉 이야기가 나오자 자꾸 날을 세우고요. 제 경험상 이런 긴장감은 보통 첫 한 시간 안에 이미 결판이 납니다. 누가 뭘 갖고 있는지 파악이 끝나면, 그 다음부터는 말 한마디마다 의도를 읽게 되는 겁니다.
여기에 진주처럼 보험을 팔 목적으로 동창회에 나온 캐릭터까지 더해지면서 자리는 점점 복잡해집니다. 이처럼 동창회에서 자주 벌어지는 상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직업·연봉 비교로 인한 감정 충돌
- 과거 관계를 이용한 영업 시도
- 오래된 비밀이나 과거 사건의 폭로
- 학창 시절 괴롭힘에 대한 미청산 감정
왕이준이 등장하면서 달라지는 서사 구조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왕이준이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제가 보면서 순간 멈칫했는데, 그 전까지는 동창들끼리 치고받는 가벼운 희극처럼 보이다가 이준이 앉는 순간 공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화 서사 구조에서 말하는 카타르시스 유발 인물(Catalyst Character)의 전형적인 역할입니다. 카타르시스 유발 인물이란, 이야기의 전환점을 만들어 내는 인물로 다른 등장인물들이 숨겨왔던 감정과 진실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말합니다.
이준은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인물입니다.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손가락 검은 자국, 반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했던 고백 에피소드가 차례로 드러나면서 동창회의 성격 자체가 바뀝니다. 그냥 어색한 재회 자리가 아니라,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살아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돌 던진 사람은 기억 못 하고, 돌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는 대사가 머릿속에 오래 남더라고요.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심리적 외상(Trauma)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적 외상이란,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이 시간이 지나도 심리·행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태를 말합니다. 국내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 중 상당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영화가 아쉬운 이유, 그래도 볼 만한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깊어질 줄 알았습니다. 캐릭터 배치도 좋고, 각자가 안고 있는 사정도 흥미롭게 설정되어 있어서요. 그런데 막상 보니 몇몇 인물은 충분히 풀리지 않은 채 장면이 넘어갑니다. 이것은 영화 서사에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등장인물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면적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서사 흐름을 의미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앙상블 영화(Ensemble Film)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앙상블 영화란, 단일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인물이 동등하게 서사를 나누는 구조의 영화를 말합니다. 이 방식은 다양한 시선을 한 자리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각 캐릭터에게 충분한 서사를 배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의 영화는 인물을 2~3명으로 압축할 때 훨씬 밀도가 높아지더라고요.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용원 게이, 홍게이, 방찬석 같은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는 장면마다 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설정 없이 동창회라는 공간의 불편함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코미디 영화지만, 웃고 나서 묘하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오락물 이상의 기능을 합니다. 국내 코미디 영화의 관객 만족도 조사에서도 '공감도'가 높을수록 재관람 의향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타나는데(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이 영화는 그 공감도에서 꽤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습니다.
동창 최후의 만찬은 오래된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솔직한 영화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관계가 저절로 편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청산하지 못한 감정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창회 갔다가 이상하게 피곤해서 돌아온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그 이유를 꽤 정확하게 설명해줄 것입니다. 설 연휴에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같이 보고, 각자의 동창 썰을 풀어보는 자리에 딱 맞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