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한국판 SF 스릴러 정도로 가볍게 틀었다가, 보는 내내 제가 꽤 오래 전에 애써 묻어뒀던 감정들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감정을 숨기고 사는 뇌과학자가 주인공인 닥터브레인, 설정만큼이나 이야기가 사람을 꽤 깊은 곳까지 건드립니다.

뇌동기화 설정이 만들어낸 서사
닥터브레인의 핵심 설정은 뇌파 동기화(Brain Wave Synchronization)입니다. 여기서 뇌파 동기화란 두 사람의 뇌 사이에 전기적 신호를 공명시켜 기억과 감각을 공유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신경과학(Neuroscience) 분야에서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를 통해 이와 유사한 방향의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뇌 신호를 외부 장치로 읽어내거나 전달하는 기초 연구들이 그것입니다. 드라마는 이 개념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죽은 사람의 뇌를 스캔하면 그 기억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이어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기억 전이(Memory Transfer)의 부작용입니다. 기억 전이란 한 개체의 기억 정보가 다른 개체에게 옮겨지는 현상을 뜻하는데, 드라마에서는 기억뿐 아니라 습관, 신체 반응, 심지어 고양이의 동체 시력까지 전이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 부분은 분명 과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야기가 훨씬 자유롭게 뻗어나갑니다. 이런 설정을 황당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SF 장르의 전제를 충실히 따르면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방식이 꽤 솔직했다고 생각합니다.
닥터브레인에서 주목할 만한 장치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뇌파 동기화를 통해 죽은 자의 기억을 스캔하는 설정
- 기억 전이의 부작용으로 신체 능력과 습관까지 함께 넘어오는 구조
- 살아있는 사람과의 동기화는 불완전하고 위험하다는 한계 설정
- 죽은 것으로 밝혀진 이강무가 세원 앞에 나타나는 반전
이 구조 덕분에 단순한 추리극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이 과연 온전히 한 사람의 것인지를 묻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실제로 신경심리학(Neuropsychology)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은 재구성(Reconstruction)의 산물로,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뇌연구원). 드라마는 이 특성을 적극 활용해, 세원이 스캔으로 얻은 기억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불완전한 단서로 취급합니다.
감정전이가 건드린 것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아들 도윤이의 뼈를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원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로 인해 공감 능력이 현저히 낮은 인물로 설정돼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감정 인식이나 표현이 전형적인 방식과 다르게 나타나는 신경발달적 특성을 말합니다. 세원은 어릴 때 엄마가 눈앞에서 사고로 죽는 순간에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고, 아들 장례식 다음 날 바로 출근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몸으로 통과하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한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함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뭘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가 됐었거든요. 세원의 변화가 남 얘기처럼 안 보였던 건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작품이 감정선보다 설정에 집중했다는 비판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일부 조연 캐릭터들은 감정적으로 충분히 소화되기 전에 지나가버려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주인공 세원이 뇌동기화를 거치며 타인의 감정을 흡수해가는 과정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됐다고 생각합니다. 공감 능력의 발달을 다루는 이야기로서, 이만큼 구조적으로 일관된 설정을 갖춘 한국 드라마는 흔치 않았습니다.
악마를 보았다의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은 만큼 차갑고 이물감 있는 화면 구성이 드라마 내내 유지됩니다. 뇌스캔 장면의 시각적 연출은 기억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느낌을 꽤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이 많은데, 저 역시 그 몽환적인 분위기가 이야기의 불안정함과 잘 맞았다고 느꼈습니다. 국내에서 SF와 심리 스릴러를 이 정도 밀도로 결합한 작품은 당시 기준으로 분명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실제로 국내 OTT 드라마 중 애플TV 플러스에서 방영된 한국어 콘텐츠 최초 사례라는 점은 작품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출처: 애플TV 플러스 공식 사이트).
닥터브레인이 모든 사람에게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설정이 낯설고 전개가 빠른 편이라 중간에 길을 잃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과 감정이 어떻게 한 사람을 만들어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 경험상 이건 한 번쯤 직접 확인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감정을 머리로 통제하려다 오히려 더 고립됐던 기억이 있다면, 세원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